한국의 목조건축(木造建築) 개관(槪觀)

한국 목조건축(木造建築) 개관(槪觀)

99 김성희

1. 한국 건축의 역사

우리나라 건축은 고대로부터 중국대륙의 영향권 안에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단순히 중국식 건축을 그대로 모방함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 민족 나름의 독창적 건축 기법을 가미함으로써 한국 건축의 독창적인 경지를 마련하였다.

낙랑군이 한반도에 설치되던 시기부터 본격적인 한(漢)나라의 문물이 직접 전해짐에 따라 중국의 건축기법 또한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중국풍의 건축양식이 일반사회까지 깊숙히 파고 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 후 낙랑국을 멸망시킨(313) 고구려는 지형상 중국과 가장 밀접하여 백제나 신라보다 한걸음 앞서 중국의 문물을 받아 들였고 건축활동도 활발하였으며 그에 따라 건축기법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현존하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통해서 상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고분벽화 속에 그려진 건물의 가구 부재와 공포의 양식묘사를 통해 고구려의 목조건축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고분의 벽화에는 전각도(殿閣圖)가 없어 이 시기의 고급 목조 건물을 볼 수 없으나, 전실과 주실 사이의 단청(丹靑)된 석재(石材)나 동쪽 벽 끝의 기둥과 두공〔枓　: 우리 나라에서는 공포라고도 하며, 주두 위에 첨차와 소로로 짜올려진 조적물(租積物)을 말하며, 두(枓)는 주두나 소로를 가리키고 공(　)은 첨차를 말한다〕등을 보면 대강은 짐작이 간다. 주방이나 그 밖의 부속 건물은 모두 기와지붕으로 보이며, 주방 기둥에는 기둥머리에 주두(柱枓)가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고구려에서는 불교 도입 이전에 이미 기둥에는 주두, 두공을 올리고 각부재는 홈이나 축으로 연결하는 이음새로 가구(架構)되고, 기와를 사용하며, 건물을 기단 위에 짓고 있고, 중요한 건물에는 귀면(鬼面)등 웅장한 문채(文彩)의 단청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나 신라의 건축에 관한 자료는 별로 찾아볼 수 없어 당시의 건축 수준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백제의 풍속이 고구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던 사실에 비추어, 백제와 신라의 건축은 고구려의 건축 수준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는 우리나라 건축에 현저한 변화와 발달을 촉진시켰다. 삼국은 모두 국도(國都)를 중심으로 많은 사찰을 조성하고 각개 건물도 뛰어난 기법에 의해 건립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구가 하나도 현존하는 것이 없으므로 다만 정연하였던 가람(伽藍)의 배치라든지 건물터에 남아있는 기단석이나 초석들에 의해 지상에 건조되었던 건물들이 장대하고 화려하였음을 상상케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중엽 이후, 우리나라는 당(唐)의 문화를 흡수하여 불교예술은 한층 더 고조되었으며, 건축활동 또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건축에서도 기법이나 조형의식, 실용수학의 응용 등이 최고조에 달하였음은 현존 유적지의 정리된 기단, 정연한 초석들, 세련된 와당의 조각수법 등에서 찬란하였던 건축의 면모를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족 이하 일반 민가에까지 건축제한을 하여 신분에 맞는 집을 짓도록 와당이나 겹처마의 사용 제한 및 공포, 단청, 금은제 장식품 등의 사용여부를 규제하였던 사실들을 보면 제한받지 않았던 건축의 호화로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왕조에 들어와서도 초기나 중기까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고 통일신라 양식이 그대로 전승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국 송(宋)과의 교류를 통하여 얼마간은 송의 영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나, 그것은 목조 건축의 세부에 좀더 양식적 요소가 가미될 정도의 변화로 근본적인 건축양식의 변화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중기에 송(宋)이 중원(中原)에서 화남(華南)지방으로 남천함에 따라 화남지방에서 성행하던 새로운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전해진 목조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그 양식의 건축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주심포 양식이라 한다.

주심포 양식은 목조 건축의 가장 장식적 요소의 핵이 되는 두공이 기둥머리 위에만 놓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건물 내부에 기둥이 없는 넓은 공간을 만드는 데 적합한 가구 수법으로 된 건축이다. 우리나라에서 주심포 양식의 완성 단계의 가장 오래된 건물은 고려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이 부석사 무량수전이 한 조형(祖形)이 되어 이 계통의 목조 건축이 조선왕조 초기에 가장 성행하고 계속 중기와 말기에도 우리나라 법당(法堂) 건축에 채용되어 왔다.

고려 시대의 말기에는 다시 새로운 목조 건축 양식이 도입되었다. 이전의 주심포와는 달리 기둥머리 위뿐만이 아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두공을 배치한 양식으로서 건축의 모습이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것인데, 이를 다포 양식(多包樣式)이라 한다. 다포 양식은 원(元)과의 교류에서 도입된 것이다. 원(元)은 중국 중원을 차지하면서 중국 동북지방에서 행해지던 두공이 많고 장중하며 위풍이 있는, 옛 북조 계통의 목조 건축의 분위기를 지닌 양식을 중국 중원에 이식시켰고, 그것이 고려와 원과의 교류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이 다포 양식의 건물은 고려말에 우리나라에서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조선 왕조 초기에는 왕궁이나 사찰의 주요 법당 등에 얼마간 채용되어 왔으나 점차 그 화려하고 장중한 기풍이 매우 성행하여 조선 왕조 말기에는 지방의 자그마한 비각(碑閣) 등 건물에도 이 다포 양식의 건물이 세워지게 되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서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도입되거나 창출되지는 못했다. 다만 청(淸)과의 교류에서 청(淸)의 건축의 양식적 요소가 우리나라에 다소 도입되어 사용되었으나 그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청 자체가 근본적인 새로운 건축 양식은 창출치 못했고, 기존의 건축에 장식적인 세부부재를 부가한 정도의 개성을 보였을 뿐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경향의 장식을 몇몇 건물에 시도하기는 했으나 보급되지 못했다. 그것은 청이 오래도록 국권을 유지 못했던 데에도 이유가 있겠으나,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이 그런 과식적(過飾的)인 탁하고 둔중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근본적인 이유인 듯하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에는 또 하나의 양식의 건축이 있다. 그것은 익공 양식(翼　樣式)이며 보통 익공집이라고 불리는 양식이다. 이 양식은 주심포나 다포 양식과 같이 출목(出目)이 있어 지붕 처마를 앞으로 길게 밀어내는 역할도 없고, 또 그들 두 양식과 같이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높게 올리는 역할은 없느나 기둥 위에 새 날개처럼 뻗어나온 첨차식의 장식으로, 이것이 있음으로 얼마간의 장식적인 효과를 얻고, 또 주심도리를 얼마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익공양식에는 초익공(初翼　) 또는 익공이라하는 조익형(鳥翼形) 장식부재를 한 개만 낀 것과 이익공(二翼　)이라는 이 부재를 두 개 낀 것도 있다.

이 익공양식이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지 또는 창출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런 양식의 목조 건축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그 유구가 남아 있어 어쩌면 고려시대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양식으로 된 건축은 궁전이나 사찰 건축에서는 이차적인 건물이나 개인적인 건축, 즉 침전(寢殿)이나 암자 등에 있고 또 주택 건축에서는 사당 건물에서 간혹 볼 수 있다.

2. 한국 건축의 특성

한국 건축의 주제는 목조 가구식(木造架構式) 건축으로 일관되어 왔다. 이것은 동양 삼국(한·중·일)의 공통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성 양식과 기타 많은 요소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형성하고, 이것은 결국 공간으로부터 형성되는 정서의 차이를 가져온다.

중국의 건축이 장대하여 웅장한 맛을 내고, 일본의 건축이 너무나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맛을 낸다면, 한국의 건축은 중용적(中庸的)인 입장에서 소박한 맛을 내고 있다. 이는 한국이 지질학적으로 노년기(老年期) 지모(地貌)로 되어있기 때문에 완만한 곡선으로 된 산정봉(山頂峰)이 많고 작은 구릉이 기복한 준평원(準平原)으로 되어, 여기에 건축할 건축물의 높이가 높거나 장대하면 주위 환경과 조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배경으로서의 산과 작은 구릉에 선 건축의 관계는 중용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한국 건축의 독특한 형태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붕의 용마루선은 용마루 양끝이 들리고 중앙이 휘어져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처마선은 조로를 두어 용마루선과 조화되면서 육중한 지붕면을 경쾌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 건축에 있어서 유연한 선(線)의 구성은 건축 의장상(意匠上) 선적(線的)인 구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즉, 한국 건축은 선적인 구성을 하고 있으니, 기단(基壇)이 형성하는 수평선과 기둥들이 형성하는 수직선, 그리고 다시 유연한 처마선과 용마루선, 이들은 서로 대립되면서 조화되고, 나아가 세부적으로 형성되는 지붕기왓골이 이루는 많은 선(線)들과 창호(窓戶)의 살 짜임새가 이루는 선, 그리고 목재가 가지는 섬세한 나뭇결들과 조화됨으로써 통일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건축은 많은 채〔棟〕와 채들이 크고 작은 많은 마당들을 두면서 외부공간을 형성하고, 이 외부공간의 구성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대문들과 담장들이 건축되므로 공간의 주체(主體)가 되는 몸채에 이르기까지는 공간의 연속성을 느끼며 공간의 깊이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건축의 성격은 공간의 연속성과 공간 정서의 변화와 통일성을 이루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건축은 자연과 융합하려 한다. 작은 냇물이 흐르고 완만한 작은 구릉이 있으며 작은 마을이 형성되고, 큰 들이 있으면 큰 마을을 형성하면서 자연과 조화되려고 한다.

같은 목조건축이면서 일본은 목재를 정확한 척도로 제재(製材)하여 건축하나 한국은 휜 목재는 휜 대로 적당히 맞추어 쓴다. 예컨대, 휜 목재를 대들보로 쓸 때에는 응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대공이 놓이는 자리에 목재의 휜 꼭지점이 오도록 하며, 문지방으로 쓸 때에는 휜 꼭지점이 아래로 처지게 하여 자연스럽게 보이면서도 구조적으로 안정되게 한다. 특히 기둥의 밑동을 그랭이질하여 막생긴 초석에 맞도록 한 것은 한국 건축이 얼마나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했는가를 말해 준다.

이런 성격은 특히 한국의 외부 공간에서 잘 나타난다. 사계(四季)가 분명한 한국의 풍토는 정원의 식생(植生)에 있어 결코 늘푸른나무를 심지 않고 봄이면 움트고 여름이면 무성하며 가을이면 단풍들고 그리고 겨울이면 힘찬 가지에 하얀 눈꽃이 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마당에는 잔디를 깔지 않고 처마는 막새기와로 처리하여 낙수(落水)의 여음(餘音)이 내부 공간에 투영되게 하며, 뜰의 바람 소리, 새 소리, 앞 냇가의 물소리를 모두 내부 공간에 끌어 들인다. 이것은 한국 창호(窓戶)의 창호지, 그리고 들어열개로 된 개폐법(開閉法)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즉, 기단(基壇)으로 대지(垈地)와 분리된 듯했던 내부 공간은 접어들쇠에 매단 창호로써 곧 외부 공간과 합일되며, 반투명의 창호지로 자연음(自然音)의 여과음을 내부 공간에 끌어들임으로써 종국에는 자연과 조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순리(順理)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자연과 어울리게 건축하려고 하는 것이 한국 건축의 큰 성격인 것이다.